
'나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로 보는 법
오늘도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불안감.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겪는 이 감정, 우리는 으레 '죄책감(Guilt)'이라 부르고, 심리학적 문제로 접근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 고통의 원인이 개인의 마음 관리 실패일까요?
이 글은 워킹맘의 죄책감을 개인의 심리가 아닌, 젠더화된 사회 구조의 압력으로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감정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아보고, 죄책감을 벗어던질 철학적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1. 심리학이 놓치는 것: '엄마 역할'의 이중 잣대
기존의 심리학적 접근은 죄책감을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감정으로 해석합니다. 해결책은 주로 '완벽주의를 버려라', '경계를 설정하라', '자신을 용서하라' 등 개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이 죄책감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여성학은 이 감정이 '모성 신화'와 '이상적인 엄마상'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지적합니다.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직장에서는 프로, 가정에서는 전업주부급의 헌신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이는 구조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기준입니다.
이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진단하고 상담으로 해결하려 하면, 결국 시스템의 문제를 회피하고 개인만 더욱 지치게 만듭니다.
2. 여성학적 관점: 죄책감은 '보이지 않는 노동'의 대가
워킹맘의 하루를 살펴보면, 눈에 보이는 노동(업무, 육아, 가사) 외에도 엄청난 양의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Labor)'을 수행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 바로 죄책감의 연료입니다.
- 정신적 부하(Mental Load): 아이의 스케줄, 식단, 교육, 병원 예약 등을 끊임없이 계획하고 기억하는 '돌봄 관리자' 역할. 이 관리가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 감정 노동(Emotional Labor): 항상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엄마의 역할을 연기하고, 아이의 정서를 '제대로'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
이 노동들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엄마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부됩니다. 따라서 워킹맘이 느끼는 죄책감은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노동 착취의 대가이며 불평등한 분배 구조의 명백한 증상인 것입니다.
3. 죄책감 '대신' 시스템을 향한 '분노'로 바꾸기
워킹맘의 죄책감을 해소하는 열쇠는 '심리적 치유'보다 '사회적 인식 전환'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왜 미안해야 하는가?'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아이를 기르는 일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느껴야 합니다. 이 분노는 비로소 '개인적인 변화'를 넘어 '시스템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워킹맘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 상담을 통한 개인의 적응이 아니라,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회적 인정입니다. 죄책감은 당신의 미덕이 아니라, 불합리한 시스템의 증상일 뿐입니다. 죄책감을 털어내고, 당당하게 당신의 노동과 존재를 주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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